모바일 SNS혁명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사회문화적 의미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은 실재세계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결합이다. 증강현실에서 가상현실은 실재세계를 더욱 실재답게 구현하는 수단이다. 가상현실이 사이버 세계가 현실보다 더욱 실재하는 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가상’을 만들어 내는 반면에 증강현실은 사이버 상의 가상현실의 도움으로 증대된‘실재’세계를 구현해 낸다.
기존 디지털 미디어의 주된 관심이 실재하는 현실에서 파생된 가상현실(거짓말, 모방, 카피, 사진, 영화, 소설, 판타지, 시뮬라크르, 이미지 등)의 동역학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모바일 혁명, 소셜 네트워크 혁명으로 대변되는 증강현실은 실재하는 현실세계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동안 '가상현실'에 대한 철학적 의미분석이나 개념정의가 심층적으로 연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만큼 모호하다는 것이다. 가상현실이 추구하는 바가 인간 욕망의 끝없는 확장이었다면, 증강현실은 무서울 정도로 섬세하고 정확한(증강된)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를 추구한다.
기존 가상현실 연구자들은 증강현실을 가상현실의 일부로 보고 있으나 이는 최근에 불고 있는 모바일 혁명, 소셜네트워크 혁명이 보여주는 잠재적인‘혁명’적 성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이라니...
모바일혁명, 소셜네트워크 혁명이 가져오는 증강된 현실 인식은 과연 어느 정도로 혁명적일까. 혁명이란 정치,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 소통의 방법, 소유양식, 생산양식, 소비양식, 예술 등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천지개벽이 혁명이다.
중세 쿠텐베르그의 인쇄기술의 혁명이 교부들의 독점물이었던 성서를 보편화시켜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져왔듯이 작은 획기적 기술의 발명이 당대의 문화와 정치, 종교,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사람들은 근대 산업혁명을 통해 합리적인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근대 농업혁명을 통해 인간의 역사 이래로 만성적 식량 부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포드주의 생산방식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서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과학기술혁명이 신자유주의 시대, 지독한 독점 자본주의와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지구적 총 부는 증가했으나 분배가 문제였다. 분배에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의지와 목적의식 하나만으로 사회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이 그것이다.
100년간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이나 자본주의 사회에 복지와 분배, 평등사상의 필요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과학혁명이 물질혁명, 인식혁명이었다면 사회주의 혁명은 가치혁명이며 인문적 혁명이었다.
컴퓨터 혁명은 20세기 후반부터 제조업 중심의 후기 산업사회를 대체한 또 다른 혁명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등장은 후기산업사회를 공고히 할, 제어와 계산, 정보 축적 등의 보조적 혁신기술에 불과했고, 이어진 인터넷 혁명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IT 혁명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을 통한 IT혁명은 기존의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를 실물을 소유할 수 있는 정보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정보서비스 기술혁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제조업 과잉생산과 중복투자로 인한 제조업의 붕괴, 실재하지 않은 파생상품, 신용상품, 가상제품 범람으로 IT 혁명마저 버블로 끝나고 말았다.
닷컴버블, 파생상품버블, 신용버블, 실재하지 않는‘욕망의 상품화 현상’이 상업 이미지와 포장, 산업디자인을 통해 욕망하는 만큼 풍선처럼 커져 갔다. 실물 부재의 상황에서 실물을 보지 못하는 세계 소비자들은 단지 이미지를 사고 소비하기 시작했으며, 실체 없는 욕망된 상품을 사기팔시 시작했다. 실재가 아닌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망된 상품은 '가상(시뮬라크르)’에 불과했다.
실재의 귀환
실재에 눈감았던 세계시장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터지면서 추악한 실물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물, 제조업의 붕괴와 과잉 생산된 제품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디자인을 아무리 바꾸어도 집에 멀쩡하게 잘 작동하는 가전제품을 바꾸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지불능력이 고갈된 소비자는 새롭게 디자인된 기성제품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세계적 공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닷컴버블과 IT버블이 터진 후 갑작스레 등장한 것이 웹 2.0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혁명, 소셜네트워크 혁명이다. 이는 당면한 현실을 포커스를 맞춰서(증강시켜서)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소비자가 다국적 대기업의 봉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세련된 산업 디자인과 전문가에 의해 보증된 문화 상품들은 소비자 개개인의 검증과 네트워크 망을 이용한 경험의 공유를 통해 정말 실물이 존재하는지, 진짜 관람할 가치가 있는지, 그만한 서비스를 받는 게 합당한지, 실시간으로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극적인 혁명적 변화
드디어 근대 자본주의 발생이후 처음으로 생산과 소비의 주인공이 자본가에서 소비자 대중에게로 옮겨가는 극적인 혁명의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는 전문가의 한 마디 보다 소셜네트워크 망의 대표 격인 위키피디어 백과사전이 더 권위 있게 되었다. 집단지성의 탄생과 더불어 전문가 몰락의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의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혁명과 트위터와 같은 SNS 혁명은 사회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탈권위, 탈위계 질서를 구축하면서 중심 없는 대중들의 강력한 연대의 무기가 되고 있다.
소비자 대중, 다중들은 더 이상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다국적 기업들의 봉이 아니다. 그들은 감시하고 거짓을 들춰내며 감춰진 진실과 팩트를 발견하고 확실히 검증된 실물만 소비한다.
사람들은 경제불황의 여파와 더불어 실물을 실시간 확인 가능함에 따라 가상제품을 과도하게 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생산자들에게 경쟁을 붙여 더욱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는 합리적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대중의 출현
근본적인 변화는 이것이다. 소비자가 생산자의 거짓을 감시하고 폭로하며 도덕적이지 못한 제품보다 솔직하고 윤리적 제품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탐욕스러운 다국적 기업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을 실시간 트위트를 통해 검증하며 소통하고, 거대 언론사, 포털 기업체를 통하지 않고도 대중들 스스로 네트워킹하면서 제품을 평가하고 정치인, 연예인의 거짓말을 밝혀내고, 실력 있는 사람은 실력만큼 인정해 주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갈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졌다.
이들 소비대중들에게 쿠텐베르그의 활자처럼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것이 다름 아닌 가상현실을 탑재한 모바일 스마트폰, 트위터와 페이스 북으로 대표되는 SNS 혁명이다. 아이폰으로 무장한 대중은 시뮬레이션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 일명 앱(어플리케이션)이라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 실재하는 사물에 접근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인가 대중의 감시인가
IT버블 이후 갑작스럽게 나타난 웹2.0,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시대정신은 급진적 포옹, 선물하기, 탈상품화, 급진적 자립, 공동체 의식, 시민의식, 급진적 자기표현, 흔적 남기지 않기, 참여 그리고 즉시성이라는 열 가지 원칙에 기초한다.
페이스 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인한 개인의 정보인권, 프라이버시권, 사생활 침해 여부가 요즘 뉴스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생활 노출로 인한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범죄자의 사생활 또한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시민, 소비자들이 자신만의 사적인 취향과 욕구를 정치권력기관과 독점기업의 상업적 감시망에 급진적으로 노출시키는 만큼 정치권력기관과 탐욕적인 독점기업의 부도덕한 음모 또한 대중들의 감시망을 피하기 어려워 졌다. 이젠 선택이 필요하다. 자신의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급진적 노출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익명 속에서 아바타로 살 것인가.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페이스 북과 모바일 폰에 이식된 자신의 아바타가 자기 존재를 대신하면서 익명으로 사고하며 익명으로 비판할 수 있다.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잘만 관리하면 개개인의 정보인권이 더욱 신장될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언론자유가 개인의 증강된 현실 속에서 활발히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물 대신 자신을 상징하는 아바타는 자신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익명과 아바타는 실재하는 나대신 실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정치권력과 다국적 독점기업이 만들어 낸 위험과 공포, 파생상품이라는 보드리야르식의 "조작된 실재",시뮬라크르는 소셜네트워트 사회 속의 스마트한 대중들 손에 아바타란 이름으로 전취되었다.
아바타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아바타라는 가상현실적 아이콘이 나의 현실적인 인식수준을 증강시키는 것이지, 내가 가상현실 속의 아바타를 증강시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바타의 힘을 증강시킨다면 그때부터는 소설이며 판타지이며 게임이다.
증강현실의 혁명적 매력은 “증강”에 있지 않고 "현실"에 있다. 모바일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 북 등의 매체는 가상현실을 도구로 현실 세계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포커스를 맞추고 포착하는(증강시키는) 혁신적인 매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증강 현실 게임
소셜 네트워크는 인터넷 상에 존재 하는 가상현실이다. 그러나 이 가상현실은 현실세계에서 탈주한 욕망 덩어리가 아니라 현실세계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물론 실재를 지향하지 않은 순수한 가상현실 프로그램도 있다.
기존 PC 게임이나 증상현실 게임 등이 그것인데 주로 인간의 전자적 놀이와 오락일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욕망을 전자화한 게임일 뿐이지 실재는 아니다.
증강현실 게임에서는 현실세계가 가상현실의 배경, 수단이 되곤 한다. 실재는 단지 리얼리티를 증강시키기 위한 가상현실의 도구일 뿐이다. 증강현실이 게임과 예술 등의 가상현실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것일 뿐 현실은 그대로다. 우리들의 확장된 현실인식은 게임의 형식이 아닌 증강된 정보와 이를 현실세계처럼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가상현실은 문화예술 쪽에서는 주요한 분석 대상이다. 그것이 가상현실 자체로서의 철학적, 미학적 의미이든, 아니면 좀 더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상현실이든, 주요한 키워드임이 틀림없다.
가상현실로서의 증강현실인가 아니면 증강현실 속의 가상현실인가. 예술은 가상현실을 표현할 것인가, 실재현실을 표현할 것인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사진, 미술, 회화, 연극, 음악, 영화에서 보아왔던 참여예술이냐 순수예술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던 과거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어찌되었건 웹2.0시대의 증강된 검색기능과 실시간 소통 가능성이 증대함에 따라 소비 대중들은 숨겨진 자본주의 1인치와 국가권력, 다국적 기업의 거짓말을 실시간으로 눈치 채고 실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다.
소비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어서 더 이상 농락당하거나 사기당하지 않고, 정치와 시장질서의 왜곡을 폭로하여 합리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혁명적 가능성을 지니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증강현실과 문화예술
절대 정치권력과 독점 자본가에 의해 가짜와 가상현실 상품, 거짓과 욕망부추김으로 만들어진 파생상품, 판타지에 사기당해 온, 실물을 저당 잡힌 지구촌 소비자들은 실물, 실재, 리얼리티에서 더 이상 한 눈 팔지 않아도 감춰진 1인치의 진실왜곡을 쉽게 알아 챌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소비대중이야 말로 인식의 지평이 역사상 가장 놀라울 정도로 확장된 똑똑한 ‘스마트대중(smart people)’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가능케 한 것이 모바일 스마트폰의 가상현실적 구현에 힘입은 ‘증강현실'의 힘 때문이다.
스마트대중들은 더 이상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익명의 다중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답을 찾고 평가도 받는다. 이 스마트대중들은 예술작품도 스스로 만든다. 스스로 작가가 된다. 사진 예술가, 작곡가가 되었다가 스스로 비평가도 된다. 지식정보든, 상품이든, 가치든 독점은 불가능한 시대에 와 버린 것이다.
독재와 독점이 불가능한 사회 만들기, 이것이 중심 권력이 해체된 다중권력, 집단지성의 힘이다. 모바일 SNS로 인한 집단지성은 더 이상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고 위키피디어 백과사전을 더 신뢰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 수 많은 개인들로 부터 퍼스 식의 무한해석작용이 가능한 집단지성은 언젠가는 좀 더 명징한 진리값에 수렴할 것이라는 과학적 낙관주의를 가능케 한다.
그러한 집단지성은 과학적 지식과 당대의 진리를 절대적 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포퍼식의 반증되지 않은 근사적 참인 이론, 진실, 지식, 진리로 여기게 만든다.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지만 점점 "근사적 참"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중지성, '열린사회'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SNS 혁명으로 인한 집단지성의 힘은 지구적 헤게모니 집단의 영향력을 점점 약화시켜가고 있다.
문화예술분야 쪽만 국한해 본다면,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작금의 시대는 학문적 전문주의는 계속 지속되겠지만, 전문가 문화예술 보다는 스마트 대중문화예술이 시대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갈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아이폰으로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인 영화, 일인 음악, 일인 사진작가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기존에 정의되었던 '가상현실'에 대한 개념 재정립이 시급하다. Hyper reality, Virtual reality와는 질적으로 다른, 갑작스럽게 닥친 Augmented reality 시대에 대한 발 빠른 인문학적 연구들이 이루어길 기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범람했던 과거 십 수 년 전에도 누군가 외쳤던 구호 하나, 늘 상 그래왔지만 현실은 신자유주의 경제 대공황과 함께“문제는 다시 리얼리즘"이라는 증강현실로 돌아왔다.
(* 이상의 글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 혁명이 몰고 올 증강현실시대의 장점만 기술해 본 것이다. 현재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단점들 또한 적지 않을 터, 스마트 혁명이 가져온 역효과, 역설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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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이번 NASA 발표, '과학' 아닌 '쇼'다
NASA 측의 이번 외계생명체 소동,“NASA 희귀 미생물 발견, 외계생명체 찾는 일에 큰 암시”(http://durl.me/3xt27 ).
이 기사 보고 비소 든 커피 마시다 뿜을 뻔 했다.
흔히 알기로 비소는 독극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허용기준치 이상일때만 독극물이다. 수돗물 속에서도 비소가 들어 있다. 극미량이지만 비소는 많은 곳에 존재한다. 담배에도 비소 성분이 들어 있다. 사람의 인체에 치명적일 정도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심각해 하진 않는다.
'비소 박테리아' 보다 더 신기한 생명체는 지구상에 많다. 킹코브라, 복어 등. 이것들은 아예 독을 만들어 낸다. 왕개구리, 두꺼비 등은 이런 독사를 잡아먹어도 살아남는다. 심지어 비소를 마셔대는 많은 생명체가 존재한다. 흡연하는 Homo sapience 들은 어쩔건데.
이번 NASA 발표는 '과학'이 아니라 '쇼'다. 자연과학은 저렇게 대놓고 생중계 하지 않는다. 중대한 발견이라면 권위있는 학술지(Nature, Science지 등)에 논문형태로 제출하고 검증받은 후에 언플해도 된다.
마치 과거 황우석 박사의 언론플레이가 생각난다. 과학자들이 왜 이런 비과학적인 언론 플레이를 마구 해 댈까. 문제는 이번에도 역시 예외없이 '돈'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20100409190654
<나사, "오바마 우주계획 행성탐사에 투자하라"> 위 기사 참고
이번 '중대 발표'는 NASA 가 오바마 보라고 예산삭감에 저항하는 '이슈 만들기"일 뿐이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아스팔트 뒤집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천문학적 국가예산 써가며 비소 박테리아를 우주도 아닌 지구에서 발견했으니 최소한 오바마에게 할 얘기는 생긴 셈이다. 그 동안의 정부예산지원으로 괴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오바마가 내 후년에도 예산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NASA 측은 슈퍼맨이라도 잡아 놓을 것이다. 과장법 좀 쓴 것 어쩌겠나, 과학자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NASA의 내년 예산삭감 여부가 심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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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보고 비소 든 커피 마시다 뿜을 뻔 했다.
흔히 알기로 비소는 독극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허용기준치 이상일때만 독극물이다. 수돗물 속에서도 비소가 들어 있다. 극미량이지만 비소는 많은 곳에 존재한다. 담배에도 비소 성분이 들어 있다. 사람의 인체에 치명적일 정도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심각해 하진 않는다.
'비소 박테리아' 보다 더 신기한 생명체는 지구상에 많다. 킹코브라, 복어 등. 이것들은 아예 독을 만들어 낸다. 왕개구리, 두꺼비 등은 이런 독사를 잡아먹어도 살아남는다. 심지어 비소를 마셔대는 많은 생명체가 존재한다. 흡연하는 Homo sapience 들은 어쩔건데.
이번 NASA 발표는 '과학'이 아니라 '쇼'다. 자연과학은 저렇게 대놓고 생중계 하지 않는다. 중대한 발견이라면 권위있는 학술지(Nature, Science지 등)에 논문형태로 제출하고 검증받은 후에 언플해도 된다.
마치 과거 황우석 박사의 언론플레이가 생각난다. 과학자들이 왜 이런 비과학적인 언론 플레이를 마구 해 댈까. 문제는 이번에도 역시 예외없이 '돈'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20100409190654
<나사, "오바마 우주계획 행성탐사에 투자하라"> 위 기사 참고
이번 '중대 발표'는 NASA 가 오바마 보라고 예산삭감에 저항하는 '이슈 만들기"일 뿐이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아스팔트 뒤집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천문학적 국가예산 써가며 비소 박테리아를 우주도 아닌 지구에서 발견했으니 최소한 오바마에게 할 얘기는 생긴 셈이다. 그 동안의 정부예산지원으로 괴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오바마가 내 후년에도 예산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NASA 측은 슈퍼맨이라도 잡아 놓을 것이다. 과장법 좀 쓴 것 어쩌겠나, 과학자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NASA의 내년 예산삭감 여부가 심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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