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7일 일요일

보이지 않는 고릴라와 천안함

Selective Attention Test(1999)




위 실험은 1999년 하버드 심리학과에서 행해진 유명한 실험이다. 흰 옷 입은 학생 3명이 한팀이고 검은 옷 입은 3명이 다른 팀이다. 각 팀은 서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농구공을 패스하는데, 검은 옷 팀의 패스는 무시하고, 흰옷 팀 사람들의 농구공 패스 횟수가 몇 번인지 세면된다. 주어진 시간은 1분이고 주의력을 집중해서 센다.

패스횟수는 15회가 정답이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 두 심리학자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위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마지막에 질문한다. "고릴라를 보았습니까?" 놀랍게도 실험참가자 50%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이 실험은 일명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으로 대단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세계 곳곳에서 실험한 결과 50% 정도의 사람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고릴라와 검은 옷 사람들이 색깔이 비슷했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 다른 학자들이 빨간 고릴라를 출현시켰지만 30% 정도의 사람들이 여전히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다.

위 실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바라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실험이었다. 우리가 무엇인가 바라본다고 해서 바라본 대상을 다 인식하는 것은 것은 아니다. 단지,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시선에 들어온 장면 모두를 우리 뇌는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 뇌는 시선에 들어온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용량의 한계가 있단다.

두 심리학자는 이런 현상을 '무주의 맹시"라 불렀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어떤 대상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쉬운 예로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 시청에서 신촌까지 운전한 당신이 핸드폰 통화를 끝냈을 무렵 어떻게 운전해 왔지는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것도 '보이지 않는 고릴라 현상'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쯤되면 우리가 확실하게 여기는 어떤 기억 속에도 "보이지 않은 고릴라"가 한 번 쯤은 지나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현상은 일상의 사소한 기억에서부터 사회적인 큰 사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같은 범죄사건을 목격한 목격자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최근 출판된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에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사건의 한 예를 들고 있다. 2001년 2월 9일 발생한 미국 핵잠수함과 일본 어선의 충동 사례가 그것이다.




"조지 부시의 임기 중 처음으로 발생했던 중요한 국제적 사건을 기억하는가? 사건은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무렵인 2001년 2월 9일에 발생했다. 오후 1시 40분쯤 하와이 근해에 있던 미해군 핵 잠수함 그린빌호의 함장 스코트 워들 사령관은 잠수함을 빠르게 잠수시키는 긴급기동 훈련인 '긴급 잠항'을 지시했다.

사령관은 이어 '메인 부력탱크 긴급부상'을 지시했다. 메인 부력탱크에 든 물을 고압의 공기로 밀어내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잠수함을 수면 위로 올리는 작전이다. 영화<붉은 10월>에도 나오는 이런 군사 작전에서는 잠수함의 선수가 수면 위로 크게 튀어 오른다.

그런데 그린빌호가 수면으로 급상승하던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함정 전체가 흔들렸다. "맙소사!" 위들 사령관은 말했다. "도대체 위에 뭐가 있나?"

아주 빠른 속도로 수면위로 상승하던 그 잠수한 바로 위에 일본 선박 에히메마루(愛媛丸)가 있었던 것이다. 북극 지역에서 유빙을 뚫고 올라 갈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그린빌호의 수직타는 선박을 두 동강 내고 말았다. 연료가 새면서 배에 물이 차올랐고, 불과 몇 분 만에 어선은 기울여졌다.

무거운 선미 쪽이 먼저 가라앉자 배에 있던 사람들은 뱃머리쪽으로 앞 다퉈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부명보트에 올라 구조되었지만 선원 세 명과 승객 여섯 명이 죽었다. 반면 그린빌호는 경미한 손상만 입었을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뭐가 잘못이었을까? 최첨단 음파 탐지기를 갖추고 베테랑 승무원이 조정하는 현대식 잠수함이 어째서 그렇게 가까이 있는, 거의 60미터에 달하는 큰 선박을 발견하지 못한 걸까?"


위 사건은 흡사 미핵잠수함과의 추돌설에 등장하는 "천안암 사건"과 거의 유사하다. 미핵잠수함과 천안함 충돌설이 사실이라면, 미핵잠수함 함장의 잠만경엔 '고릴라'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린빌호의 함장 스코트 워들 사령관은 부상하기전 잠만경으로 360도 관찰하였으나 일본어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미국 교통안전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사령관은 나중에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잠만경으로 관찰하면서 "배를 찾고 있지도 않았도, 배가 있을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배를 찾고자 하지 않았기에 바로 근처에 있는 일본어선이라는 고릴라에 시선이 순간적으로 머물면서도 배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천암함 사건과 관련해서 미핵잠수함과 천안함의 충동설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미핵잠수함 내부로 들어가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2001년 그린빌호의 예를 통해 시각을 바꾸어 천안함 사태를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충동설을 전제로, 당시 서해상의 미핵잠수함은 소나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장이 야간 투시 잠만경으로 360도 관찰 후에도 바로 근거리에 있는 천안함이라는 고릴라를 보지못했을 것이다.

"미핵잠수함 그린빌호가 급상승하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함정전체가 흔들렸다. '맙고사!' 위들 사령관은 말했다. '도대체 위에 뭐가 있나?'"

뭐가 있긴 "보이지 않는 고릴라"가 있지.
고릴라가 보이지 않는 순간 사건은 발생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일본 어선과 천안함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였는지도 모른다.


※ 이 글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에서 본문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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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1일 월요일

종교적 체험과 자율신경계

편도체에 들어앉은 하나님


라캉은 의식과 무의식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생각, 사고, 잡념, 고민, 걱정, 불안 등도 대뇌피질 전두엽에서 직간접적 경험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두엽에 구조화된 의식은 동물뇌, 정서뇌라 불리는 변연계(특히 편도체)에 영향을 주고 걱정, 불안, 안도, 평안함 등을 일으킨다.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은 일종의 강박증, 노이로제, 집착증인데, 프로이드는 종교를 '집단신경증'이라 했다.

기도, 명상, 수련, 참선 등은 이런 전두엽의 논리적, 언어적 사고를 중단하고 우리 의지와 독립된 자율신경계를 안정상태로 조절해서 평안에 이르는 게 하는 방법들이다. 자율신경계를 우리 의지대로 조정하는 방법은 '호흡법'밖에 없는데, 그래서 명상, 참선 등을 행할 때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이 그런 연유에서다.

과거에 슈가레이 레너드라는 복서가 있었는데 이 선수의 반사 신경이 얼마나 빠른지 보통사람의 2배 정도였다고 한다. 옛 무사들의 지독한 수련은 반사신경을 증진시키 위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칼놀림. 대뇌에서 보고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기 전에 척수에서 명령을 내려버린다. 이것은 척수반사다. 훈련에 따라 운동선수들의 반사신경은 보통사람보다 2배 정도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한다.



깨달음, 무념무상, 견성, 종교적 체험은 대뇌피질, 전두엽의 논리적, 언어적 사고를 끊고 스스로 뇌의 변연계가 관장하는 자율신경계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이런 조절능력은 훈련, 수련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어떤 종교적 깨달음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깨달음의 댓가로 전두엽의 논리적, 언어적 사고를 중지한 것이기에 구체적 삶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기에는 훈련이 부족하고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현실문제와 연관된 전두엽의 추리능력을 포기했으므로 당면한 가족사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판단능력이 떨어지므로 현실 괴리감이 발생할 수도 있다. 흔히 현실감각이 없다, 현실도피자, 이상주의자, '도튼 중' 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득도, 영성, 구원을 받을 것인지, 범부로 생활세계를 이성적으로 따져가며 살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위와 구조가 일으키는 부조리를 논리적 사고로 판단하는 것을 '불의'라 할 때, 불의에 분노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불의 때문에 화병이 나는 것도 문제다. 이 둘을 잘 조절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교육원리(지덕체의 함양)다. 이 둘을 잘 조합한 이가 누구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그들이 아닐까.

"깨달았다“, ”성령의 은사를 입었다“, ”견성을 이뤘다"는 말의 다른 말은 전두엽의 언어적, 논리적 사고행위를 중단하고 자율신경계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게 충분히 훈련 받았다,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현실세계를 언어적,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도 된다.

한 개인의 명상체험과 종교적 체험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체험만으로 무리하게 현실세계를 해석하려할 때, 전두엽 사회에 편도체 조절자가 무리하게 끼어들 때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개인적 특이체험의 일반화는 맹신과 독단을 낫는다.“일본지진은 예수를 믿지 않아서", “도를 아십니까”, “어리석은 중생들”이라는 말을 함부로 뇌까리는 것에서 그런 행태를 볼 수 있다.

필자는 아무래도 배부른 달마대사 보다는 가난한 인간이 낫지 싶다. '인간'이란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나란 존재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 형성된, 연대하는 주체(레비나스)이기 때문이다. 괴롭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전두엽의 탐구와 비판, 문제해결 등에서 얻는 '성취감'이라는 놀라운 재미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율신경계 조절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분명 하나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적 행위는 대부분의 무신론자들도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다. 꽃꽂이, 낚시, 여행,모형수집, 뜨개질, 바둑, 개키우기, 연필 돌리기, 책수집, 연예인 팬활동, 악기연주, 음악감상, 트위터질 등. 일상에서 매일 반복되는 특정행위,징크스, 집착, 소아병적 애착 또한 일종의 종교적 행위(E-프롬)일 수 있기에, 타인에 해가되지 않고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의 달인이 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성스러운 종교행위가 아닐까. 생활자체가 도 닦는 것,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 참으로 일리있다. 천국과 도가 뇌의 편도체에 있는 것이라면, 도는 산에 있지 않고 길에 있으며 천국은 너의 마음 속에 있고 한 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도처에 편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를 깊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나의 살아있는 동물성 Vital Sign을 느껴 본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두엽에서 논리적, 언어적으로 표상된 경험을 반영한 변연계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조용히 지켜본다는 것이고, 자율신경계가 나를 어떻게 난도질하는지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싶거나 명상을 통해 도인이 되고 싶거나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호흡’에 집중하면 된다. 호흡이야말로 내 의지로 자율신경계에 접근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10년만 하면 소원성취할 것이다. 근데 그런 종교적 결단 없이 범부들도 10년 정도 한 가지 일에 매진한다면 그 분야에선 누구나 달인, 도인이 될 수 있다.

천국과 도를 구함에 있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100년 동안 아름다운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만 줄창 보는 반면, 한쪽은 액션, 스릴러, 미스테리, 멜로, SF, 드라마 모든 영화를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골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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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4일 금요일

불법조업 중국어선 '조준사격'을 우려한다

< 불법조업 중국어선 '조준사격'을 우려한다 >


필자의 트위터 글, "비무장 민간인에게 '조준사격'? 심각한 국제법위반 아닌가? 조준에 맛드렸군화. RT @hanitweet: 해경, 불법조업 중국 어선에 첫‘조준사격’ http://bit.ly/g0dpoo" 에 대한 비판글이 트위터로 10개 이상 올라오고 있다.

한겨레 기사를 링크하고 간단한 맨션을 단 것인데 어디서 보았는지 윗 맨션에 대한 비판 글들이 아이폰에 간간히 뜬다.

일일히 나의 의견과 오해 소지에 대해 트위터리안들께 답글을 보내긴 했으나 [다음]포탈 사이트 해당 기사 밑에 소셜웹이라는 트위터 타임라인에 계속 떠 있기 때문에 뒤늦게 본 이가 똑 같은 비판글을 보내온다.

같은 답장을 계속 보낼 수는 없기에 나의 트위터 의견을 아래 모아보았다.

이번 해경 '조준사격'에 대한 나의 입장은 절대 반대한다,이다. 이유는 아래 트윗터에 쓴 글 참고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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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불법조업 중국 어선에 첫 ‘조준사격’, 이 기사 제가 우려한 것. 과거 도끼든 중국선박들 '조준사격' 안 하고 어떻게 단속했는가. 아덴만식 과잉진압 안 했으면하구요. 60년4.19, 80년 광주, 튀니지, 리비아, 모두 '조준사격'이 문제였다는 걸 강조한 것예요.


예! 우리 해경 입장도 충분히 생각합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저는 '위협사격'과 '조준사격'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자국정부가 있는 외국인에 대한 '조준사격'은 외교적 문제로 커질 수 있으니 '조준사격'외의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구요. '조준사격'이 단속의 주된 방법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범죄행위를 했다해도 '조준사격'하진 않지요. 법절차를 통해 범죄행위를 묻지 않나요? 중국입장에서 중국인을 '조준사격'하는 것은 중국을 조준사격하는 것으로 여길겁니다. 우리 불법어부들을 중죄도 아닌데 미국,일본,중국이'조준사격'한다면, 사실 그런예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싶군요. 


제가 잘 모르지만, 배에는 망치,칼,도끼,나무봉, 이런게 많지 않나요. 뭐 무장한 민간인일 수도 있지만, 다리에 총맞은 중국어민이 '조준사격'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죽는다면, 국제법을 어긴 불법 중국어선도 국제적 비난을 받겠지만, '조준사격'으로 불법조업 외국인을 죽인 나라는 더 심한 국제적 비난과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을까요? 경찰이 정당방위로 총을 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찰 개인 생명권 차원의 정당방위로 봐야지,불법범죄 외국인에 대한 '조준사격'을 공권력의 '원칙'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그럴일이야 없겠지만 사망사고 나는 순간에 해경훈련문제와 동시에 외교분쟁화할 우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조준사격' 그 취지는 이해하나 실행하지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았으면 합니다. 


[다음]포탈 트위터 쇼셜왭에 <'해경,불법조업 중국어선에 첫 조준사격'>기사 밑에 제가 쓴 '조준사격'비판글이 쫙~. 반대의견에 집중포화 맞고 있네요. [다음] 밉네요. 이기사 비판했다고 기사밑에 걸어놓는짓 하지마세요. 이 정도 기사 비판못하면 그게국민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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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트위터 글 받침, 띄어쓰기등 내용에 지장 주지 않는 선에서 약간 수정하였다.
일단, 여기까지 내 의견 올리고 좀 더 디테일한 분석글은 시간나는 대로 업데이트 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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